부르심에 합당한 생활(직분자의 바른 자세) (엡4:1-6) (2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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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등록일 21-08-1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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. 겸손의 자세

이 겸손은 기독교가 만들어낸 단어라고 할 수 있는 미덕이다. 예수님 이전에는 언제나 이 겸손을 움츠리며 굽실굽실하며 노예 같은 미천한 자질이라고 보고 오히려 멸시했었다. 고대 헬라인들은 오히려 용감을 미덕으로 보고 겸손은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고 봤던 것이다.

 

이 겸손이 어디서부터 오는가? 겸손을 많이 말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겸손할 수 있을 것일까?

1.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자기 인식에서부터 온다. 자기의 무가치, 자기의 연약성 즉 자기라는 이 자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고 무가치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 때 비로소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다. 자기를 극화시키는 사람은 겸손 할 수가 없다.

 

성경 인물 두 사람

1) 구약성경에서 모세

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궁중에서 모든 것을 통달하고 못할 것이 없다라고 생각했을 때 그의 마음에 애국심이 발로하여 자기 동포를 괴롭히는 애굽인을 돌로 쳐 죽이는 일을 했으나 결국 이것이 쫓겨나는 결과를 초래했고 미디안 광야 40년 생활 후 하나님이 부르실 때 모세는 완전히 자기의 무능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고백했다.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의 겸손을 인정하시고

모세는 실상 매우 겸손한 사람이라고 하시며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 그만큼 겸손한 사람이 없었다(12:3)

 

2) 신약의 사도 바울

본래의 이름 : 사울 = 큰 자라는 뜻.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의 음성을 접하고 난 후에 바울 = 작은 자로 바꾸어졌다. 그의 위대한 업적이 많으나 그 모든 것은 자기를 발견한데서 부터였다.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라”(고후12:10)라든지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”(고전15:9)라든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”(3:8)라든지 또 나는 죄인 중에 괴수(딤전1:15)고 한 이 모든 말은 바울의 겸손을 표하는 말들이다. 그러기에 바울은 내게 힘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”(4:13)라고 고백했다.

 

2. 그리스도인 의 겸손은 자기의 생을 그리스도의 곁에 (함께) 두고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의 빛 아래 둘 때

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으매 가지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”(2:5~8)

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”(4:6)(잠언3:34 인용)

베드로 사도는

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”(벤전5:5)

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”(벧전5:6)

주님의 마음을 굳게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거할 때 겸손한 사람이 된다.

 

3.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자신의 피조물성을 항상 의식하는 데서 온다(R.C. 트렌취(Trench) 감독)

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창조함을 받은 하나의 피조물(흙덩어리)을 알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을 해야한다.

찬송의 시:

죽임과 위험에서 언제나

주님 나를 구하신다

당신의 능력아니더면

숨 한 번 못내 쉬리라

건강, 친구, 그리고 부모님을

주님 내게 주셨네

이 땅에 무슨 축복있으랴

오직 하늘에서 온 것일 뿐

 

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속한 것을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또 줄 수도 없다. 오직 우리는 받기만 한다. 우리는 피조물이다. 피조물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고 조물주 하나님 앞에서 겸손 할 것뿐이다.

그리스도인의 겸손은

자기를 바라보는 것과

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과

하나님을 깨닫는 것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.